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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녕군 혜덕사 준공당시 배경
작성자관리자(onyeong@hanmail.net)작성일2023-08-31조회수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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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녕군 사당 혜덕사 건립 당시 모습(2000년 6월 10일 준공)


(상단의 홍살문은 잘못 제작되어 현재 철거된 상태임) 




혜덕사 사우 상량문

조종(祖宗)의 끊임없는 은택(恩澤)이 수십세 (數十世)에 전(傳)했고, 수많은 손자(孫子)들은 삼천리(三千里)에 퍼졌네. 제후(諸侯)의 아들들은 시조(始祖)가 되니,예기(禮記)에서 이르지 않았는가? 각 파에서 사우(祠宇)를 세워서 봉안(奉安)하니 악(樂)은 처음을 좋아함이라. 아! 우리 온녕군부군 (溫寧君府君)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일곱째 아들이요, 신빈신씨 (信嬪辛氏)의 둘째 아들이시다. 부귀(富貴)로 그 지조(志操)를 바꾸지 않고 효우(孝支)하고 덕(德)을 삼갔다. 시호(諡號)가 양혜공(公)이니 시호의 주(註)가 족히 그 증거일세. 온량호악 (溫良好樂)을 가로되 양(良)이오, 유질자민 (柔質慈民)을 가로되 혜(惠)라. 

우산군부군(牛山君府君)은 자품(資稟)이 돈독(敦篤)하고 뜻(志)이 확고(確固)하고 의리를 좋아하며 현사(賢士)를 높였다. 생고 희의공(生考僖懿公)은 세조(世祖) 정난맹권(靖亂盟券)에 서명(署名)하지 않았고 몸소 육현자(六賢子)와 더불어 혼조당적 (昏朝黨籍) 귀양가서 죽음을 함께 당했다. 호는 정재(靜齋)요, 시호(諡號)는 정민(貞愍)이다.  청백수절(淸白守節)을 가로되 정(貞)이오, 재국봉간(在國逢艱)을 가로되 민(愍)이라 .용성군시호 (龍城君諡號)도 또한 정민공(貞愍公)이라. 愍이오.  무풍군충민공 (茂豊君忠愍公)은 여국망가 (慮國忘家)를 가로되 충(忠)이오, 재국봉간 (在國逢艱)을 가로되 민(愍)이라. 한산군민절공 (韓山君愍節公)은 재국봉간(在國逢艱)를 가로되 민(愍)이오. 호렴자극(好廉自克)을 가로되 절(節)이라. 화원군 혜정공(花原君惠貞公)은 관유자인(寬柔慈仁)을 가로되 혜 (惠)요, 청백수절(淸白守節)을가로되 정(貞)이라. 금천군효의공(錦川君孝公)은 자혜애친(慈惠愛親)을 가로되 효(孝)요, 강이능단(剛而能斷)을 가로되 의(毅)라. 청양군정헌공 (靑陽君貞憲公)은 청백수절 (淸白守節)을 가로되 정(貞)이오,

 행선가기 (行善可紀)를 가로되 헌(憲)이라. 전(前) 6月5日에는 무풍군(茂豊君)이 먼저 갑자화(甲子禍)를 입었고, 후(後)6月24日에는 육공자(六公子)가 병인화(丙寅禍)를 같이 입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듣고 음읍(飮泣)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그 원한을 먼저 씻었다. 고양제공자(高陽諸公子)의 장지(葬地) 사패 (賜牌)받음이 있고 땅을 주어 아래 윗대의 향화(香火)를 받들게 했다.

 온녕군사장미아리오백년여 (溫寧君賜葬彌阿里五百年餘)에 대자리(大慈里)로 천봉(遷奉)하니, 조자손(祖子孫) 삼세(三世)가 한 구역이라. 오직 한산군(韓山君) 사장(葬)은 남양주군 벌내면 화접리(花蝶里) 줄천(茁川, 샛말)에 계신다. 이에 사우(祠宇)를 새로 지어 한 마루에 같이 받드는 일을 이루게 되고 어련히 팔현(八賢) 신도(神道)가 좌우에 계시는 것 같아 효도와 우애하는 유풍(遺風)을 생각하게 한다.  일은 거창(巨創)해도 하늘로부터 돕고, 공사는 工巧함을 다해 수일 (數日)에 완공을 했다. 단문(短文)이나마 공손히 지어 우영차 부르는 소리를 도움이라. 

兒郞偉抛梁東하니 미아리 (彌阿里) 옛 산소터가 아련하고, 정민공(貞愍公)을 모신 위에 면천(緬遷)하니, 대자대효 (大孝大慈)의 오르고 내리는 가운데이다. 

兒郞偉抛梁南하니 저 남쪽 절도(絶島)에서 제공자께서 담소(談笑)하는 것 같구나. 갑자병인(甲子丙寅)의 선후화 (先後禍)는 망망천고(千古)에 이 설움을 어찌 견딜고? 

兒郞偉抛梁西하니 개성(開城) 제릉(齊陵) 길이 아득히 바라보이네. 임진교(臨津橋)는 끊기고 찻길은 아득하니 조수(鳥獸)의 발자취가 임의로 종횡 (縱橫) 했네. 

兒郞偉抛梁北하니 새로 경계가 산하(山河)를 반분(分半)했네. 좌우가 서로 호시탐탐(虎視耽耽)다투니 의리를 지닌 백성이 어찌 옛 나라를 생각지 않을 수 있을고? 

兒郞偉抛梁上하니 일당(一堂)에 삼세팔현(三世八賢)을 배향(配享)함이라. 종영(宗英)의 명위(名位)가 사문(斯文)에 떨치니 호서(湖墅, 양화도)의 풍류(風流)를 추상 (追想)하게 하네. 

兒郞偉抛梁下하니 담 밖에 산이요, 산밖에 들이라. 나라에서 준 슬픔과 영광이 느껴서 하늘에 닿으니 제공자 (諸公子)께 일체로 향화 (香火)를 올리네. 

엎드려 바라옵건대 상량(上樑)한 뒤에 천지신명 (天地神明)이 크게 보호하여 사우(祠宇)가 잘 이루어 질지어다. 멀고 가까운 종친의 뜻이 모두 같고 차례로 선영(先靈)의 봉안(奉安) 고유(告由)를 올린다. 당시 형제(兄弟)분들의 우애와 서로 사랑함을 생각하고 후손들은 너와 나 모두 사욕(私慾)을 버리고 공(公)을 잊지 말기를 경계한다. 작고 큰 일을 서로 화합해서 천추만대(千秋萬代)의 제향(祭享)을 지금부터 시작하노라. 

성조개국 육백팔년 기묘 구월이십이일한산군 십육대손  진재(震宰)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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